• 입력 2021.10.06 14:19
  • 수정 2021.11.18 10:44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18)

중화학공업과 전자산업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내다보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키웠던 산업이었어요. 그렇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의 주인공은 한국 정부가 아니에요.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과 결단력으로 시작됐습니다.

1983년 2월 7일, 일본 도쿄의 밤샘
이병철 회장의 경영 철학 가운데 ‘심사숙고하고 과감하게 단행하라’라는 내용이 있어요. 이 경영철학은 반도체 사업에서 한껏 발휘됐죠.
1983년 2월 7일 일본 도쿄의 오쿠라 호텔 505호실, 일흔네 살의 이병철 회장은 실리콘밸리에 파견했던 반도체산업 조사팀이 제출한 보고서를 보며 밤을 꼬박 새웠어요.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만약 제대로 결실을 거두지 못하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겠죠. 하지만 이 회장은 고민 끝에, 자원이 부족한 한국 기업이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진출해야 할산업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는 날이 밝자 반도체 사업 계획을 알렸어요.
반도체에 뛰어들면서 이 회장이 했던 말입니다.
“중량으로 계산하면 석탄 1t은 40달러, 철 1t은 340달러, 알루미늄 1t은 3,400달러, TV 1t은 2만1,300달러이다. 반도체는 1t에 85억 달러인데, 뭘해야 할 건지 분명하지 않으냐.” 삼성은 반도체 사업 진출과 함께 64K D램 기술 개발을 시작한다는 계획도 발표했어요. 미국과 일본 등 당시 반도체 선진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무모하다는 반응을 보였죠.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까지 내며 조롱했어요.
그러나 1983년 12월 삼성반도체통신(1988년 삼성전자와 합병)은 보란 듯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시험생산을 마쳤어요.

등록문화재 제536호로 등록된 반도체. 1983년 삼성반도체 통신이 개발한 64K D램 모듈이다. [사진 : 삼성전자]
등록문화재 제536호로 등록된 반도체. 1983년 삼성반도체 통신이 개발한 64K D램 모듈이다. [사진 : 삼성전자]

10개월 만에 64K D램 생산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반도체 산업. 삼성반도체통신은 빠른 사업 전개를 위해, 1983년 기흥 공장을 건설하면서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건설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연구소에서 설계를 마치면 이를 바로 건설 현장으로 가져가 공사하고, 문제가 생기면 연구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 해결했죠. 이런 방법으로 1년 반이 걸리는 생산 시설 공사를 6개월로 줄여서 생산 개시를 앞당겼다고 해요.
반도체 핵심 장비인 ‘포토장비’를 들여올 때 또 다른 기록이 탄생했어요. 광학 기계와 정밀기계 장치로 구성된 포토장비는 진동에 매우 약해요. 문제는, 수입한 포토장비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날까지도 기흥 톨게이트와 공장 사이의 도로가 비포장도로였다는 거죠. 포토장비 운송팀은 고속도로에서 시속 30㎞로 거북이 운전을 하고,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그 순간까지 공장까지 어떻게 마지막 구간을 운송해야 할지 고심했대요. 그런데 놀랍게도, 톨게이트에서 기흥 공장까지 4㎞ 도로는 반질반질한 포장 도로로 바뀌어있었습니다. 운송 차량이 출발했다 돌아오는 오전 반나절 동에 기어이 도로포장을 완료한 거예요. 이런 무섭기까지 한 의지가 있었기에, 삼성반도체통신은 10개월 만에 64K D램 생산에 성공한다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1994년 삼성전자가 세계 처음으로 256M D램을 개발한 뒤 만든 축하 광고.[사진 : 삼성전자]

1994년 세계 첫 256M D램 개발
1910년 8월 29일은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았던 ‘경술국치’입니다. 그로부터 84년 뒤인 1994년 8월 29일, 삼성전자는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인 256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어요.
삼성은 1992년 9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일본은 자국 기업인 도시바도 비슷한 시기에 64M D램을 개발했다면서 성과를 깎아내렸죠. 그렇지만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256M 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하자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 언론은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이 일본을 앞섰다고 놀라며 기사를 내보냈죠.
세계 최초 256M D램 개발 발표는 왜 '8월 29일'에 이루어졌을까요? 256M D램 개발의 주역이었던 황창규 박사. 그는 IBM,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세계 최고 정보통신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1989년부터 삼성전자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을 이긴다는 뜻을 품었던 그의 진두지휘로 삼성전자 256M D램 개발팀은 기술 개발에 매진했죠. 마침내 뜻을 이루자, 한국 국민에게 일본을 이긴 기쁨을 선사하고자 이날을 택해서 통쾌한 소식을 발표했다고 전해집니다.

세계 1위 지키는 한국산 메모리반도체

1983년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메모리반도체 생산국이 된 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산 메모리반도체의 국제 경쟁력은 높아졌습니다.
현대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를 만들고, 1984년 7월 경기도 이천에 반도체 공장을 준공했어요. 금성사(현 LG전자)도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죠(현재 SK하이닉스). 오늘날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어요. 1990년대 이후, 개인용 컴퓨터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메모리반도체는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제품이 됐어요. 메모리반도체는 1992년 이후 현재까 지도 거의 매년 수출 품목 1위를 지키는 효자 상품입니다.

 

 

 

 

 


어린이 경제신문 1126호 

관련기사
저작권자 © 어린이 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