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3.20 17:35

라면, 바나나맛 우유로 돌아보는

어경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과 바나나맛 우유에요.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한 젓가락씩 나눠 먹는 라면은 그야말로 꿀맛이죠. 목욕 후 먹는 달콤한 바나나맛 우유는 까슬까슬한 때밀이도 견디게 해줘요.

그런데 어경이의 엄마, 아빠도 라면과 바나나 우유에 비슷한 추억이 있다고 해요. 마라탕, 탕후루 이야기에는 시큰둥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라면, 바나나우유 이야기에는 재미난 경험담을 많이 들려주세요. 어경이는 기나긴 세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깊게 뿌리내린 이들 ‘소울 푸드’의 역사가 궁금해졌어요.

‘꿀꿀이죽’ 먹는 한국인, 라면으로 구하자!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삼양의 창업주인 전중윤 회장은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죽*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았어요. 직접 먹어보니 형편없는 맛은 물론, 깨진 단추, 담배꽁초 등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이물질이 섞여 있기도 했죠.

우리나라의 식량 사정에 큰 충격을 받은 전중윤 회장은 일본에 출장 갔을 때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을 떠올렸어요. 라면으로 우리나라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그는 일본의 식품회사 ‘묘조식품’으로부터 라면 기술과 설비를 전수 받았어요. 이후 1962년 9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 이 등장했습니다.

꿀꿀이죽 6·25 전쟁이 멈춘 뒤 황폐해진 우리나라. 산업과 유통, 농사가 모두 엉망이 됐어요. 먹을 것이 없다 보니, 미군이 먹다 버린 음식을 모아 ‘꿀꿀이죽’을 끓여서 먹었어요.

우리나라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왼쪽)과 K-푸드로 인기를 끌고 있는 불닭볶음면(오른쪽). [사진-삼양식품 홈페이지 갈무리]
우리나라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왼쪽)과 K-푸드로 인기를 끌고 있는 불닭볶음면(오른쪽). [사진-삼양식품 홈페이지 갈무리]

보릿고개 넘어, 황금기 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생김새와 맛에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어요. 계속되는 보릿고개(지난 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기)가 변화의 계기가 됐죠.

정부가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밀과 잡곡 소비를 장려하는 혼·분식 장려운동을 펼치면서, 밀이 주재료인 라면 소비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기업이 진출하며 라면 시장의 황금기가 시작됐어요.

1970년대 들어서는 라면 이외에도 짜장이나 칼국수, 냉면 등 다양한 맛의 즉석면이 출시되었고, 1980년대부터는 컵라면이 등장해 라면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죠. 라면의 시대를 열었던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으로 다시금 세계적인 유행을 이끌고 있어요
(▶관련 기사 1224호 14면).

오늘날 명실공히 대한민국 ‘소울 푸드’로 자리 잡은 라면.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을지 궁금해집니다.

국민 식품 되고픈 ‘우유’의 고민

우리나라는 1960년대 말부터 독일, 미국 등 해외의 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낙농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어요. 우유 생산량도 많아졌지만, 소비는 그만큼 늘지 않았어요.

당시 우리 국민에게 우유는 낯설고, 조리법도 별로 없는 음식이었기 때문이에요. 이에 정부는 ‘우유 소비 장려정책’을 펼치며 학교와 회사에서 우유를 나눠주도록 권장하고, 우유의 좋은 점을 널리 홍보하며 나섰어요.

그렇지만,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체질적으로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우유를 먹고 배탈이 나는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우유의 이미지는 자꾸만 나빠졌어요.

체질도 이겨낸 맛의 승부, 바나나맛 우유

하루 평균 80만 개가 팔리는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사진-빙그레 홈페이지]
하루 평균 80만 개가 팔리는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사진-빙그레 홈페이지]

이때 우유의 이미지를 한 번에 역전시킨 제품이 등장했습니다. 1974년, 빙그레의 전신인 대일유업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출시한 것이죠. 당시 바나나는 부잣집에서만 먹을 수 있을 만큼 귀한 과일이었어요. 그런데 그 맛을 우유로 느껴볼 수 있다고 하니, 큰 관심이 모였어요. 바나나맛 우유는 출시하자마자 가공유 판매량 1위를 차지하며 우유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바나나맛 우유의 기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현재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바나나 우유’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무려 80%에 육박해요. 하루 평균 약 80만 개가 팔리며, 누적 판매 수량은 무려 95억 개. 2022년 빙그레 매출 1조 원 달성의 일등공신으로 꼽혀요.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넘어 미국과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어요. 장수하며 사랑받는 식품들의 이야기. 세대에 따라 기억하는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그 식품에 담긴 달콤한 추억은 계속 이어질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나요? 또 앞으로의 세대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릴까요? 

생각 플러스+ 이외에도 초코파이, 크림빵 등 많은 사람의 ‘추억의 맛’으로 자리 잡으며 수십 년째 인기를 이어오는 식품이 많아요. 긴 역사를 이용한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죠. 여러분은 어떤 추억의 음식이 있나요? 그리고 그 음식의 5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며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세요!

김해림 기자


어린이경제신문 12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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