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03.25 11:51
  • 수정 2021.11.18 09:49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④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받은 한국의 경제 성장.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경제정책을 이끌고 나아간 정부와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기술 개발과 생산에 앞장선 기업, 그리고 각자의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한 국민의 합작품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한국의 산업화 초기에 이룬 대표적인 성과를 함께 살펴봐요.

전자제품, Made in Korea!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그린 고속도로 스케치(왼쪽)와 완공 직전의 경부고속도로(오른쪽). 서울과 부산을 잇는 이 고속도로는 국내 유통의 중심축이 됐다. [사진-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1954년. 한국 최초로 화학 소재 제품인 치약 생산에 성공한 락희산업(현 LG상사) 구인회 회장은 또다른 꿈을 꿉니다. 바로 라디오 생산이에요. 당시 최고 품질의 진공관 라디오인 미국산 제니스 라디오 가격은 엄청났습니다. 쌀 50여 가마니를 줘야 살 수 있을 정도였죠.

구 회장은 한국에서도 라디오를 생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1958년 1월 전기·전자기업인 금성사(현 LG전자)를 창립했습니다.

당연히 라디오 생산 경험을 가진 한국인 기술자는 찾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독일인 헨케를 기술 감독으로 채용하고, 그를 도울 한국 기술진을 뽑아 설계팀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모델을 정하는 과정에서 헨케는 독일제 라디오를, 한국 기술진은 일본제 라디오 ‘산요’를 모델로 삼자고 했어요.
한국 기술진이 자기를 따르지 않자 헨케는 독일로 돌아가 버렸어요. 이에 금성사 경영진은 기술 감독을 다시 찾으며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경험은 없지만 의욕이 넘쳤던 김해수 주임에게 라디오 설계를 맡겼습니다.

1959년 11월 15일, 최초의 한국산 라디오가 만들어졌어요. 모델명인 A-501은 ‘전기용 진공관 5구 라디오 제1호’라는 뜻이 담겨 있었죠. 정격전압은 100V(볼트)였지만, 당시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전압이 50V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잦았기에 50V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대요. 1962년에는 ‘Made in Korea’가 표시된 국산 라디오를 미국과 홍콩으로 수출했고, 1961년에 선풍기와 전화기를 국내 처음으로 생산한 곳도 금성사예요.

이렇게 산업화 초기에 기업을 만들고 기술 개발에 나섰던 사람들은 모두 한국 공업화의 선구자입니다. 스스로 연구해 새 상품을 개발하고, 수출도 이어지자 우리 국민은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어요.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본-쾰른 고속도로를 달리게 됐어요. 고속도로의 운송능력에 감명을 받은 대통령은 한국에도 고속도로를 세우려는 목표를 갖게 됐고, 직접 도로 구상도를 그릴 정도로 열의를 보였죠.

한국 정부는 외국에서 돈을 빌려서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나중에 도로 이용자에게 거둔 통행료로 빚을 갚는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하지만 고속도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엄청난 빚만 떠안게 된다며 반대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어요.

우여곡절을 겪은 뒤 1968년 초,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사가 시작됐어요. 한국의 첫 고속도로인 서울―인천 간 경인고속도로는 그해 말 1차 구간 공사를 마치고, 1968년 12월 21일 개통했어요.
서울-부산 간 경부고속도로는 공사 2년 5개월 만인 1970년 7월 7일 완공했죠. 총 길이 428㎞인 경부고속도로는 총 거리 대비 공사기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완공됐다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사를 빨리 끝내려 한겨울에 언 땅 위에 도로포장을 하는 등 무리한 공사가 이어졌고, 결국 개통 후 계속 보수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죠.


‘빨리빨리’만으로는 안돼요

우리나라 경제개발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내려진 지시는 ‘빨리빨리’였어요. 무엇이든 짧은 기간에 진행해 결과를 내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그 결과 부실한 점이 생겼고, 결국 나중에 다시 고치고 손질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빨리빨리’도 중요하지만, ‘안전하게, 확실하게’도 강조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완공 후 고속도로가 제 몫을 톡톡히 하자 다른 고속도로도 속속 만들어졌어요.
1973년 대전-순천 간 호남고속도로, 부산-마산 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돼 영남과 호남을 연결했어요.
뒤이어 1975년 완공된 수원-강릉 간 영동고속도로가 수도권과 영동지방을 연결하면서 전국이 일일생활권(하루 만에 전국을 오갈 수 있다는 뜻)이 되었답니다.

석혜원 작가

 


어린이 경제신문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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