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06.02 16:43
  • 수정 2021.11.18 10:31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⑨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해봤어?” 정신으로 도전해 성공시킨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공사 규모가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절반 규모였다.

1970년대 후반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중화학공업 생산시설을 갖추면서 한국 경제성장의 기반을 다진 시기였습니다. 이런 경제성장 도약기에 한국 건설기업이 중동 건설 현장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도움을 주었죠.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중동 건설 진출의 물꼬를 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입니다.

 

“무조건 해보자!” 공사 입찰 나서다
1976년 2월 16일 오전 9시 주베일 산업항 공사 입찰이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체신부 회의실.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간부 세 사람과 함께 나타났어요. 건설 공사 입찰은 가장 적은 금액을 써낸 기업이 공사를 맡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능력 없는 기업이 공사를 맡을 위험을 피하려고 미리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의 자격에 제한을 두었어요. 심지어 일본 최대 건설회사도 자격요건을 채울 수 없어 입찰 참여를 포기했을 정도였죠.
그런데 1975년 이란에서 800만 달러 공사가 중동 건설 실적의 전부였던 현대건설이 어떻게 입찰에 참여했을까요? 정주영 사장의 특기는 ‘무조건 부딪치고 보자’는 것. 그가 황당한 계획을 세울 때마다 주위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말리면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해봤어?”
현대조선소를 세울 때도 마찬가지. 조선소 건설 자금을 외국은행에서 빌린다는 것은 보통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정 사장은 1971년 9월 영국 바클 레이즈 은행으로부터 조선소 건설 자금의 대출 약속을 받아냅니다. 당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한국인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서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역설하며 은행장을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이런 도전정신을 가진 정주영 사장이 이번에는 사우디 정부 관계자를 설득해 주베일 산업항 입찰 참여의 승낙을 받아냈죠. 그리고 그날 오후 3시 조금 지나서 주베일 산업항 건설은 9억3,114만 달러를 제시한 현대건설이 맡게 되었다는 입찰 결과가 발표됐어요. 이 금액은 그해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절반 정도였어요.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죠?
다른 외국기업들은 현대건설이 제시한 금액이 말도 안 된다고 봤어요. 가장 많은 금액을 써낸 미국 회사와 비교하면 절반, 차점자보다 3억 달러나 적은 액수였으니까요.

창의적이고 독특한 공사 진행 방식
현대건설이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하는 건 초등 학생이 전공자도 풀 수 없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격이라며 모두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공사 현장 소장이던 김용재 이사는 부산 신항만 건설 등 여러 어려운 공사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지만, 바다 위 공사는 처음이었어요. 그는 홍콩과 태국을 거쳐 사우디로 가는 1박 2일 동안 공사 걱정으로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해요.
현대는 1차 공사로 깊이 10m인 바다를 길이 8km, 폭 2km만큼 메운 다음, 그 위에 항구와 기타 시설을 만들어야 했어요. 2차로는 깊이 30m의 바다에 30만 톤급 유조선 4대를 동시에 댈 수 있는 3.6km 길이의 거대한 시설을 바다 위에 세워야 했죠. 이를 위해서는 무게 400t, 가로 18m, 세로 20m, 높이 36m 크기의 철근 구조물이 필요했죠.
현대건설은 공사 기간을 줄이고 해외에서 구조물을 만드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이 구조물을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만들기로 했어요. 그리고 파도가 심한 인도양을 거쳐 주베일까지 35일 동안 운반한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외국 기술자들은 “무모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현대는 항해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컴퓨터로 정밀 분석한 뒤 19번에 걸쳐 구조물을 운송했습니다. 이 공정은 세계 건설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됐어요. 또 바닥을 종 모양으로 판 뒤 철근과 콘크리트를 넣고, 거기에 철근 구조물을 세우는 공법도 세계 처음으로 시도됐답니다.
공사가 진행된 주베일은 ‘대한민국 울산시 주베일동’으로 불렸어요. 일하는 사람 모두 한국인이고, 자동차, 음식, 사무실 가구와 집기, 심지어 필기구까지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였으니까요. 한 푼이라도 외화를 아끼기 위해서였습니다.
2년 반 동안 진행된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20세기 최대 건설공사’라 불리면서 1979년 2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어요.

중동 건설시장 휘어잡은 한국기업
주베일 산업항 공사의 성공으로 현대건설은 라스 알가르 주택항공사, 쿠웨이트 슈아이바항 확장 공사, 두바이 발전소 건설 등 중동에서 대형공사를 잇달아 맡게 되었어요.
현대는 1975년 중동 진출 후 1979년까지 51억 6,4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어요. 현대의 성공에 힘입어 국내 다른 건설업체들도 중동 건설시장에 진출하며 한국의 성장을 이끌었죠.
현대는 건설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인정받는 큰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린이 경제신문 1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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