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08.19 11:15
  • 수정 2021.11.18 10:43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⑭

체코의 프라하 공항. 이리저리 둘러보니, 특이하게도 곳곳에 한글 표지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인 대한항공이 프라하 공항에 투자하고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죠.
체코에는 90여 개나 되는 우리나라 기업이 진출해 있어요.
우리 기업들은 왜 외국으로 진출하는 걸까요?

1980년대 ‘무역장벽 뛰어넘자!’
1979년, 미국이 한국산 컬러 TV의 수입을 제한하고 나섰어요. 우리 기업의 기술력이 높아져서 선진국이 한국을 경쟁 상대로 보기 시작한 거죠. 국내 기업은 한국산 제품에 수입 규제가 계속될 것으로 봤어요. 이는 우리 기업이 해외 진출을 계획하는 계기가 되었죠. ‘한국산 제품’을 제한하는 무역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잠시 1981년 여름, 미국 앨라배마주 북부 테네시강 근처에 있는 도시 ‘헌츠빌’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볼까요?
앨라배마주 정부 청사에서 세 명의 한국인이 산업개발국장 루벤을 포함한 주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네요. 한국인들은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홍보실에서 만든 홍보 영상을 보여줍니다. 30분짜리 자료에는 호남정유공장(현 GS칼텍스), 반도상사(현 LX인터내셔널), 금성사(현 LG전자) 구미공장과 부평공장 등 그룹을 소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자료를 보고 공감한 주 정부 관리들은 세한국인이 주지사를 만날 수 있게 해 줬어요. 한국인들은 30분 뒤 주치사와 만나 금성사 헌츠빌 공장 건설을 요청했고, 주지사는 계획을 검토합니다. 한참 망설이던 주지사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1981년 9월, 금성사는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 생산기지가 되는 컬러TV 공장 건설에 나섭니다.
그리고 약 1년 뒤인 1982년 10월 공장 준공식이 열렸고, 외국에서 만들어진 TV세트가 첫선을 보입니다. 한국이 가전제품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역사적 순간입니다.
감격한 사람들은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죠. 이후 헌츠빌 공장에서는 컬러TV뿐 아니라 VCR(비디오 녹화 영상 재생기), 전자레인지, 비디오테이프 등도 생산했어요. 금성사에 이어 삼성전자도 1982년에 포르투갈에 현지 생산 법인인 ‘SEP’를 세워 외국으로 진출했습니다.

체코 모라바슬레스코주에 있는 도시 노쇼비체. 이곳에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자리해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은 수입 제한 조치를 피하고자 시작됐다. [사진 출처 : 위키커먼스]
체코 모라바슬레스코주에 있는 도시 노쇼비체. 이곳에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자리해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은 수입 제한 조치를 피하고자 시작됐다. [사진 출처 : 위키커먼스]

1990년대 ‘인건비 싼 나라 찾아서’
1980년대까지 수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업종은 해외 진출 허가를 받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주로 대기업만 상품을 많이 팔 수 있는 나라로 진출했어요. 그러다 1990년대에 근로자 임금이 싼 나라로 기업이 찾아가는 유행이 일어납니다. 이에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공장을 옮겨가기 시작했어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국내 임금 수준이 높아져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해외에 설립된 한국기업의 현지법인은 1980년대 1,200여 개에서 1990년대에 9,300개를 넘어설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이렇게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너무 늘어나자, 기업의 해외 진출은 국가적 자랑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공장을 외국으로 옮기고, 생산시설을 늘려야 하면 국내 대신 외국에 새 공장을 세우니 경제는 성장해도 국내 일자리는 늘지 않는 현상이 생긴 거죠.
그래서 정부는 해외 진출 기업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대책을 마련했어요. 국내 생산 활동을 위해 공장을 만들고 기계를 사는 등 생산시설을 마련할때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 주거나, 기업이 내야 할 세금을 일정 기간 덜 내게 하는 혜택을 주고 있죠. 이렇게 기업이 생산과 조립 시설을 외국에서 본국으로 다시 옮겨오는 현상을 ‘리쇼어링(Reshoring)’이라고 한답니다.

[Why? 경제] 기업은 왜 외국으로 나가나요?

외국에 공장을 세우고, 상품을 생산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말도 다르고, 노사 문화와 풍습도 다르죠. 또 필요한 부품을 공급받는 것도 힘들어요.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해외로, 그리고 해외로 나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이로운 점이 많기 때문이에요.
첫째, 무역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선택이에요. 무역 장벽이란 자국 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하는 상품에 비싼 세금(관세)을 물리거나,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외국에서 들어오는 상품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그 대책으로 아예 해당 나라에 공장을 세우고,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기도 해요. 사실상 그 나라 기업이 되는 거죠. 무역 장벽을 세우던 나라도 자국에 일자리가 생기고, 현지에 있는 중소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니 두 손 들어 환영합니다.
둘째,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나 중국은 인건비나 공장 시설비, 땅값 등 비용이 낮아서 같은 상품이라도 값싸게 생산할 수 있어요. 그만큼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셋째, 해외시장 개척에 유리하기 때문이에요. 외국에서 사업을 벌이면 현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알고, 시장 변화에 빨리 대처할 수 있어요.

 

 


어린이 경제신문 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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