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05.07 07:58
  • 수정 2021.11.18 10:27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⑥

제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 되면서 나라의 수출은 늘고 경제도 성장했어요.

하지만 연간 물가 상승률이 10%를 넘어섰고, 외국에서 빌린 빚도 많이 늘어났지요.

그래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 1976년)은 ‘성장―안정―균형의 조화’를 내세웠어요.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구조로 성장을 계속하되 국제수지 균형을 이루고, 농어촌경제를 발전시켜 ‘사회경제적 안정과 균형을 함께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수출 늘려보자”, 중화학공업화 선언

1972년 5월 30일. 무역확대진흥회의가 끝난 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수석을 불렀어요. 그리고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할 방안이 무엇이냐고 물었죠.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오원철 수석의 응답이었어요.

중화학제품은 부가가치가 높아서 국민소득을 높이는 데 유리합니다.
1970년대 세계 시장 환경을 살펴보면 중화학제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났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중화학공업이 앞서 발전한 선진국은 다들 힘든 중공업을 싫어해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고,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해때문에 생산 시설을 늘리기도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화학공업을 키우면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어요.

그러나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중화학공업에 투자하는 건 모험이었죠. 가발이나 의류 같은 경공업은 투자 후 제품 생산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지만,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가 결실을 거두 려면 10년 이상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런 위험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침내 1973 년 1월 12일 ‘중화학공업화 선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진 : e영상역사관 / 이용 문의-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기획과 044-203-3025]
1975년,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는 장면 [사진 : e영상역사관 / 이용 문의-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기획과 044-203-3025]


철강, 조선, 화학 등 6대 공업 선정

중화학공업을 기르기 위해 대한민국은 과감히 선택했어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노리고 생산시설 규모를 크게 만들었고, 품질과 가격 경쟁력도 세계 일류 수준을 목표로 했어요. 다양한 중화학 공업 분야 중 산업 전반의 성장을 끌어내는데 효과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으며,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는 산업을 찾았지요.
그 결과 철강,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화학 6가지 종목의 중화학공업이 뽑혔습니다.

철강 부문의 발전을 위해 1973년 7월에 완공된 포항종합제철의 시설을 지속해서 넓혔어요. 비철금속 부문은 온산공업단지에 아연과 동 제련소를 세웠고, 화학 부문은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를 넓히고 여천에 제2단지를 만들었죠. 배를 만드는 조선 부문은 현대 울산조선소와 대우 옥포조선소, 기계 부문으로는 창원종합기계공업단지, 전자 부문에서는 구미 전자공업 단지가 본격적으로 추진됐어요.

다행히도, 이 정책은 성공을 거뒀어요. 철강, 자동 차, 조선, 석유화학공업은 빠르게 발전하여 1970년대초 40% 미만이었던 중화학공업화 비율은 1979년 말 50%를 넘어섰어요. 주요 수출 품목도 바뀌었죠.

한국은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를 맞이했어요. 다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점도 생겨났어요. 이 내용은 다음 ‘경제성장 과정’ 편에서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재벌기업, 크게 성장

중화학공업 생산 시설은 마련하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설비 투자를 하고 돈을 벌어들일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매우 길어서 기업이 섣불리 투자에 나서기 어려워요.

이에 정부는 중화학공업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1973년 12월 국민투자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했어요. 또 은행에 저금으로 모인 저축성예금의 20%를 국민투자기금으로 돌렸고, 공무원연금기금도 국민투자기금으로 활용했어요. 중화학공업 기업은 대출 금리도 낮았고, 기간도 10년으로 길게 제공했어요.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한 거죠.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기업들은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불렸습니다. 경제개발 실시 이전부터 이미 사업 기반을 다졌던 현대, 삼성, 럭키금성(현 LG)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조선, 자동차, 전자, 항공, 운수산업 등에 진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재벌기업으로 성장하였죠. 이는 한국 경제가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굳히는 계기가 됐어요.


석혜원 작가

 

 

 

 

 


어린이 경제신문 1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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