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07.29 13:48
  • 수정 2021.11.18 10:42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⑬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으로 한국은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인 혼란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경제 상황도 순탄하지 않았어요. 소비자물가는 1979년 18%, 1980년에는 30% 가까이 올라갔죠.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중화학공업 부문은 경제의 효자 노릇은 고사하고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어요. 다행히도 한국경제는 곧 안정을 되찾았고, 크게 도약했어요. 비결이 무엇일까요?

시장 중심 경제정책으로

암울한 정치 상황에서도 우리 경제의 기초를 다진 김재익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의 정책을 평가한 책. 그는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암울한 정치 상황에서도 우리 경제의 기초를 다진 김재익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의 정책을 평가한 책. 그는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1980년 어두운 상황을 바꾸는 데 성공한 사람은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이에요. 그는 ‘한국경제 역사의 꽃’이라고 칭송받는 인물이죠. 1983년 10월 미얀마의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일한 기간은 3년뿐이었지만, 그는 한국경제의 새시대를 여는 많은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김 비서관은 낮은 금리와 낮은 물가를 유지해 한국경제의 성장과 안정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안정과 자율, 개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를 목표로 삼았죠. 이를 위해 성장에서 물가 안정으로, 정부 주도 경제 운용에서 민간주도의 시장경제로, 국내 산업 보호에서 수입개방과 경쟁 촉진으로 경제정책의 틀을 바꾸었어요.
당시 정부가 한 자리 숫자의 물가 안정을 목표 내걸자 사람들은 불가능한 얘기라며 비웃었어요. 그렇지만 물가 안정에 노력한 결과, 1982년에는 물가상승 률이 5%대로 크게 낮아졌죠. 1983년에는 국민 소득도 2천 달러를 넘어섰어요. 1980년대 중반에는 적자를 기록하던 자동차, 전자, 철강 등 중화학공업 분야 기업들의 매출액이 크게 늘어났고, 경영실적이 좋아져서 모두 흑자(수익이 비용보다 많은 것. 반대는 적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경제체제로의 전환, 즉 시장 중심의 경제정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성과였어요.

3저 현상과 한국의 눈부신 도약

한국의 경제성장률 1961~2020. [자료 출처 : 세계은행]

경제성장은 나라의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이 커지는 것이고, 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경제성장률입니다.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을 때는 높은 성장률을 낼 수 있어요. 그러다 나라의 경제 규모가 일정한 수준까지 커지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죠.
1960년대에 이어 1970년대까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경제도 1980년대 초반부터 성장률이 점차 낮아졌습니다. 그렇지만 1986년부터 1988년까지의 3년 동안 한국경제는 놀라운 수준의 발전을 이루며 경제 후진국에서 중진국(공업화를 바탕으로 급속하게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으로 도약할 수 있었어요. 10%가 넘는 경제성장률과 상승률 3% 미만의 물가 안정, 연 100억 달러를 웃도는 국제수지(일정 기간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거래한 내역을 모은 것) 흑자 등 일찍이 꿈으로만 꾸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졌거든요.
이런 성과는 국내외 경제 환경이 성장과 안정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선 국내에서는 시장 중심의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여 경제가 활력을 찾았어요. 국제적으로는 원유 가격 하락, 낮은 달러 환율등 ‘3저 현상’이 나타나 세계 경제 상황이 한국에 아주 유리하게 바뀌었죠. 변화를 위한 노력과 유리한 국제 환경이 합쳐져 항상 적자를 기록했던 경상수지는 흑자로 돌아섰고, 한국은 눈부신 경제 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가 하락+달러 가치 하락+낮은 이자율. 왜 우리 경제에 유리했을까요?

3저 현상이 우리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이유가 뭘까요? 차근차근, 쉽게 살펴보겠습니다.
3저#1. 저유가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곤욕을 치른 뒤, 국제적으로 에너지 절약과 대체에너지 개발이 진행됐어요. 원유 소비량이 줄어들자 석유 수출국들의 결속력이 약해졌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 원유 생산량을 조정을 포기했어요. 이에 원유 생산량이 늘고, 국제 원유가격은 2/3 아래로 낮아졌어요.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는 정말 반가운 현상이었죠.
3저#2. 저달러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달러화 가치를 높게 유지했어요. 달러의 가치가 높으면 미국 입장에서 수입품 가격이 낮아지고, 수입이 늘어요. 이로 인해 미국은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많은 무역수지 적자가 갈수록 심해졌죠. 미국 정부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 달러화 가치를 낮추는 저달러 정책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미국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다른 나라의 화폐 가치는 반대로 높아지고, 달러 대비 환율은 떨어집니다. 당시 이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나라는 일본이었어요. 일본 수출품의 달러 환산 가격은 저달러 정책의 영향으로 비싸졌고, 일본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은 그만큼 낮아졌어요. 일본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한국 기업들이 큰 덕을 보았죠.
3저#3. 저금리 미국은 금리를 내려서 투자를 늘리는 저금리 정책을 선택했어요.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은 미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빌리고 이자를 내고 있었는데, 금리가 내려가자 이자 부담이 줄어들었어요. 이자로 내는 돈이 줄었으니 그만큼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었죠. 미국의 저금리는 대한민국 경제의 돈의 흐름을 원활하게 했고, 소비도 늘어나는 기회가 됐어요.

 

 

 

 

 


어린이 경제신문 1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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