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11.17 17:56
  • 수정 2021.12.01 15:29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22)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수출 1,000억 달러를 돌파한 한국 경제. 여기에 이어 1996년에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어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61년 9월 서유럽 18개국이 속해 있었던 유럽 경제협력기구에 미국과 캐나다가 가입하면서 탄생한 국제 조직. 1964년 일본, 1971년 오스트레일리아도 회원국이 되었어요.
회원국이 대부분 선진국이어서 OECD를 ‘선진국 클럽’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러다 1997년, 한국경제는 날벼락 같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외환위기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너무 서두른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OECD 회원국이 되면 지어야 할 책임이 있어요.
외환(외국 돈) 거래와 무역의 자유화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 1986년부터 4년 간 상당한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상품과 서비스 등에서 수출이 수입보다 많은 것)를 체험한 한국은, 이런 변화에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OECD에 가입하고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외국의 돈이 많이 들어오고, 금융 자율화를 추진하면 국내 경제가 나빠질 수 있으니 가입을 늦추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정부는 1995년 3월 말 경제 선진화를 위해 OECD 가입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1996년 12월 12일.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OECD 29번째 정식회원국이 되었어요. 당시만 해도 모두 “드디어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다”며 축배를 들었어요.
그러나 현실은 달랐어요. 국제기준을 받아들일 여건이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가입을 서두르다보니 부담이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OECD 가입으로 한국의 국가신용도가 올라가자 금융회사들은 예전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죠. 그러자 금융회사들은 더욱 많은 돈을 빌리게 되었고, 외국에 갚아야 할 빚의 규모는 계속 커졌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눈물겨운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한 달러 대비 대한민국 원화의 교환 비율(환율). 1997년 말에는 1달러에 1,962원까지 치솟았다. 한국 돈의 가치가 폭락하는 외환위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자료: 한국은행]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한 달러 대비 대한민국 원화의 교환 비율(환율). 1997년 말에는 1달러에 1,962원까지 치솟았다. 한국 돈의 가치가 폭락하는 외환위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자료: 한국은행]

날벼락처럼 닥친 경제 위기
한국 기업들은 자기가 투자한 돈(자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빌려서 경영을 했습니다. 기업의 대출 수요가 늘어나 빌려줄 돈이 부족해지자 금융회사들은 외국에서 돈을 더 빌리게 되었어요.
1997년 초, 한국에서 대기업의 부도가 이어지자 우리나라에 투자했거나 돈을 빌려준 외국 투자자 들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도 심각한 상황이 되었어요. 아시아 경제 전체를 위험하다고 판단한 외국 투자자들은 아시아 시장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죠.
10월 말부터는 홍콩과 한국 등 비교적 경제 수준 이 높은 나라의 기업 주식까지도 팔았습니다. 주식을 팔고 받은 돈은 외화로 바꾸어 자기 나라로 송금했는데, 송금을 위해 계속 달러화를 사들였어요. 달러를 찾는 이가 늘어나면서 달러의 가치는 크게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우리 돈인 원화의 가치는 계속 낮아졌어요. 달러와의 교환 비율인 환율이 계속 올라가는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원화 가치의 하락과 환율의 상승은 같은 상황).
환율의 안정을 위해 정부는 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던 달러(외환 보유고)를 풀어서 시장에 달러를 공급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달러화 수요가 많다 보니 원화 환율은 계속 올라갔어요(원화의 가치는 계속 낮아짐).
게다가 한국 금융회사나 기업에 직접 대출해주었던 외국 금융회사들은 만기일이 되자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어요. 전에는 돈을 갚아야 하는 만기일이 되면 이자만 받고 원금은 다시 빌려주었는데, 1997 년에는 원금을 무조건 갚으라고 한 것이에요. 빌린 돈도 외화로 갚아야 하니,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더는 외국에 진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외환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나라가 망하는 상황) 사태가 시작됐어요.

금 모으기 운동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해 나라를 구하자고 호소하는 포스터.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해 나라를 구하자고 호소하는 포스터.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외화를 빌려주는 대가로 IMF가 국내 경제정 책에 간섭하자, 사람들은 조선 말기 일본에서 빌린 돈을 빌미로 일제가 우리 경제를 지배했을 때처럼 분노를 느꼈어요. 그래서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던 것처럼, 1998년 1월 부터 금을 모아 수출해서 외화를 벌자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금 모으기’ 열풍으로 장롱 속의 금반지, 금목걸이, 아기 돌 반지와 팔찌 등이 쏟아져 나왔죠. 이를 수출하고 받은 외화는 약 2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처럼 국민이 한마음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한 덕분에 2001년 8월에 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을 수 있었어요. 여기서 우리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것 하나. 왜 금일까요? 외국에 진 빚을 갚으려면 달러와 같은 외국 돈이 있어야 해요. 달러를 구할 방법은 수출, 외국인 투자받기, 빌리기 등여러 가지가 있지만, 외국인이 한국에서 손을 떼면서 달러를 구할 수 없었지요.


어린이 경제신문 1132호  

관련기사
저작권자 © 어린이 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