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05.20 08:00
  • 수정 2021.11.18 10:30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⑧

■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것은 1964년. 이후 ‘매년 수출 40% 신장’이라는 목표 아래 ‘무조건 밀어붙이기’ 정책이 진행됐어요. 그 결과 수출은 해마다 목표에 가깝게 38~39%씩 늘어나 1971년에 10억 달러를 기록했고, 1977년에 드디어 대망의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어요.
■ 2011년부터 연간 5천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1962년 10여 개 나라였던 수출 대상 국가는 1979년 140여 개로 늘어나 거의 전 세계가 우리의 시장이 되었어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의 무역 현장을 찾아가 봅시다.

샛별 보며 출근했던 종합무역상사맨
1975년부터 무역 업체 간 지나친 경쟁을 피하고, 수출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 종합무역 상사 제도(여러 상품을 종합해서 국외 무역과 국내 유통을 총괄 관리하는 큰 규모의 상업회사)가 도입됐어요. 종합무역 상사의 자격은 ‘수출 실적이 국가 전체 무역 실적의 2% 이상인 기업’에만 주어졌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무역상사의 직원들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없는 국내 작은 기업을 대신해서 전 세계를 뛰면서 수출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무역상사 미주(아메리카 대륙)지역담당 부서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언제나 샛별을 보면서 출근했다고 해요.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오전 7시에는 사무실에 도착해야 업무 처리를 할 수 있었거든요. 게다가 이메일이나 팩스가 없던 시절이라, 수출을 위한 의사소통은 주로 텔렉스로 이루어졌어요. 텔렉스는 전화처럼 다이얼을 돌려 상대방의 전신기에 연결한 후 텔레타이프(인쇄전신기) 를 두드리면 내용이 그대로 상대방에게 문자로 전달되는 통신방식이에요. 국제전화를 걸어 진땀을 흘리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일을 해결할 때도 있었어요.
사무실 벽에는 이런 구호가 붙어 있었어요. ‘안 되면 되게 하라!’ 무역상사 직원들은 매일 이 글을 읽으면서 상담 중인 수출 건을 반드시 성사 시켜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곤 했죠.

1970년과 1980년의 5대 수출 품목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할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1970년대 초.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은 섬유류, 합판, 가발 등 경공업 제품이었습니다. 그러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중화학공업이 성장하자, 1980년에는 철강판과 선박 같은 품목이 5대 수출 품목에 들게 되었어요.

 

1970년과 1980년의 5대 수입 품목
국내 산업의 발달과 함께 주요 수출 품목이 바뀌었듯이 수입 품목에도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생산 시설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1970년의 수입 품목 1위는 일반 기계였어요. 그러나 1980년에는 생산을 위한 에너지 자원인 원유의 수입 비중이 월등하게 높아졌죠.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편이 저렴한 곡물류의 수입도 계속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출을 중시하는 경제정책을 밀고 나갔지만, 총수출과 총수입금액을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어요. 1970년과 1980년 당시 한국은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많은 무역적자국이었다는 점입니다. 규모의 성장에 내실이 아직 따라잡지 못한 상황이었죠.


어린이 경제신문 1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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