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06.16 15:11
  • 수정 2021.11.18 10:33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⑩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세계 유명도시의 공항이나 거리에서 삼성전자나 LG전자의 광고판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음식점이나 호텔에서도 한국산 가전제품을 많이 사용하죠. 그렇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전기·전자 산업은 걸음마 단계였어요. 

 

집 한 채보다도 비쌌던 ‘백색 전화’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도 전화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도 전화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죠. 기계식 교환기를 사용해 전화 교환원들이 이용자가 원하는 상대방 전화번호로 전화선을 직접 연결 해주는 방식이라 전화선을 계속 늘릴 수 없었습니다. 1970년 50만대 정도이던 전국의 전화기 수는 5년 만에 100만대로 두 배나 늘어났지만, 여전히 전화를 원하는 사람이 공급 가능한 수량보다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전화를 설치하겠다고 신청해도 마냥 기다려야만 했죠. 전화가꼭 필요한 기업이나 가정에서는 전화 가입권을 사거나 빌려서 사용했고, 전화를 빌려주고 월세를 받는 전화상이라는 가게가 서울에만 무려 600여 군데나 생기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죠. 1970년대 기준 자장면 한 그릇이 150원가량이었는데, 전화 한 대를 빌리려면 보증금 5~10만 원에 월세 2~3만 원을 주어야했을 정도로 전화는 귀한 존재였어요.

1960년대 전화 교환원이 일하는 모습. 전화를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하나하나 연결시켜주었다.

전화가입권이 50평 짜리 집값? ‘사실!’
이렇게 귀하고 비싸다 보니 전화가입권이 신청한 순서대로 주어지지 않고, 힘 있는 사람들이 먼저 차지해서 집이나 땅처럼 거래하는 일도 생겨났어요. 결국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1969년 7월 이후 개설된 전화가입권은 사고 팔 수없게 하는 법’을 만들었죠.
이후 사고파는 거래가 금지된 전화는 ‘청색 전화’, 이전에 개설되어 자유로이 거래되는 전화는 ‘백색 전화’라고 불렀어요. 체신부(현재의 과학기술정보통 신부)에서 사용한 가입전화 장부 색깔이 앞의 전화는 청색이었고, 뒤의 전화는 백색이어서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청색 전화 제도를 실시한 뒤 어떻게 됐을까요? 백색 전화 가격은 오히려 더욱 상승했습니다. 수요는 나날이 증가하는데, 거래를 할 수 있는 전화의 공급은 멈춰버렸으니 백색 전화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했죠. 서울에서 잘 산다는 동네의 50평짜리 집값이 230만 원이었는데, 전화가입권 가격이 260만 원까지 올랐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88올림픽을 앞두고 통신 시설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전화를 신청하면 다음 날 설치해줄 정도로 사정이 좋아졌어요.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으면서 마침 전화가입권 거래는 사라지게 됐죠.

공중전화
2007년 서울 길거리 공중전화기.
2007년 서울 길거리 공중전화기.

전화가 귀하던 시절, 집에 전화가 없는 사람들은 급한 연락을 하려면 공중전화를 찾았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정도니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버스 터미널, 기차역, 지하철역 등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공중전화가 남아있어요. 지난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가 났을 때 공중전화가 연락이 급한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완전히 없애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전기밥솥 만들어라” 불호령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만든 ‘코끼리 표 전기밥솥’은 한국 주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이 밥솥만 있으면 밥을 하루 한 번만 지어도 되었기 때문이죠. 끼니때마다 밥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물건이었겠어요. 한국산 전기밥솥도 있었지만 밥이 쉽게 타고, 보온을 하면 금방밥 색이 변하고 냄새가 나는 등 성능이 좋지 않았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수입이 수출보다 많아 지속적인 무역적자를 기록했어요.
그래서 전기밥솥 같은 일상 생활용품은 아예 ‘수입금지 품목’이었죠. 국외여행도 자유롭지 않아서 일본에서 전기밥솥을 사 올 수도 없었어요. 결국 코끼리 표 밥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일본 출장을 가는 사람에게 염치 불구하고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죠.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일본을 다녀오는 한국 사람들의 손에는 모두 코끼리 표 전기밥솥이 들려 있었다고 해요.
한국 주부의 코끼리 표 사랑은 일본에서도 화제였어요. 1983년 일본 신문에 ‘한국 주부들 덕분에 일본상품의 매출이 늘어난다.’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
이 기사가 전해지자 대통령이 나서서 밥솥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우리 기술을 질책하면서 6개월 안에 제대로 된 밥솥을 만들어내라고 불호령을 내리기도 했어요. 다행히 이후 전기밥솥의 성능이 한결 좋아져서 한국 주부들이 굳이 일본 밥솥을 고집하지 않게 됐어요. 오늘날 우리나라 에서 만든 전기밥솥을 사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어린이 경제신문 1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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