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1.12.01 16:19

석혜원 작가의 한국경제 성장사 (22)

1997년 외환위기. 우리나라는 IMF(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을 빌리기로 했어요. IMF는 그 대가로 국내 금융시장(돈과 관련한 시장)을 보호하는 여러 장벽을 없애고, 우리나라 금융 시장을 외국에 완전히 개방하라고 요구했어요. 이를 받아들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 금융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하게 됐습니다. 오늘은 금융시장 개방 과정을 알아봅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세계화 시대 개막
1980년대 미국 산업은 제조업보다 서비스 산업 위주로 바뀌었어요. 미국은 세계 경제에 대한 막강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국제 거래 질서를 세우고 싶었죠. 넓은 땅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값싼 농산물을 수출하고, 자신들이 강점인 금융과 통신 등 서비스 산업과 컴퓨터 프로그램 등 지식과 기술 수출을 늘리려고 했어요.
미국은 1986년 남미 우루과이에서 열린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1995년 WTO로 대체되었어요) 회의에서 새로운 무역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나라마다 입장이 달라 1986년부터 1993년까지 논의만 거듭했죠. 그러다 자유로운 국제거래를 원하는 나라가 늘어나면서 1994년 4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GATT 회의에서 123개 나라 대표가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협상을 끝냅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이죠. 우리나라에는 쌀 시장 개방 협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이 협정에 따라 1995년 1월 1일부터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국가 간 경제 분쟁 중재, 판결, 무역 정책을 감시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국제거래의 범위는 기존의 공산품과 원자재에 이어 농산물, 서비스, 자본까지 확대됐어요. ‘세계화 시대’입니다.

세계화 세계 여러 나라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가 많아지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 국제화, 글로벌화도 같은 뜻입니다. 한마디로 세계가 하나의 시장처럼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199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각료 회의. 각료 회의는 WTO(세계무역기구)의 모든 회원국으로 구성되며, 최소한 2년에 1번 이상 열린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199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각료 회의. 각료 회의는 WTO(세계무역기구)의 모든 회원국으로 구성되며, 최소한 2년에 1번 이상 열린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외환위기 이전 금융시장 조금씩 개방
UR 협정이 맺어지기 전, 한국 정부는 경제선진국의 요건을 충족시키겠다며 1981년 증권시장 개방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자본시장 국제화 장기계획'을 발표했어요. 금융시장 개방을 시도한 거죠. 그러나 국내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단번에 시장을 열지 않고 천천히 틀을 갖춰갔어요.
1980년대에 이르러 무역에서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아졌어요.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자본자유화 추진 일정’을 발표합니다. 1991년 ‘주식시장 개방 추진 방안’으로 외국 증권회사가 국내에 지점을 설치하도록 허용했죠. 1992년에는 외국인이 한 종목(상장 기업 주식)에 10%까지 살 수 있도록 했고, 1996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비율을 20%까지 확대했어요.
또 외환시장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어요. 1990년 3월부터 변동환율제(환율의 변동을 시장에 맡기는 것. 반대의 개념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거죠.
다만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막기 위해 하루 변동 폭은 정부가 제한했어요. 그러니까 외환위기 이전 금융시장은 개방의 문을 살짝 열어놓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 2001년~2008년은 연말 수치.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주식을 팔면서 비중이 줄어들었다.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 2001년~2008년은 연말 수치.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주식을 팔면서 비중이 줄어들었다.

IMF, 돈 빌려줄 테니 ‘시장 개방’ 요구
IMF는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UR 협정대로 완전한 자본시장 개방을 요구했어요.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제한을 모두 없애라는 거죠. IMF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외환시장은 1997년 12월 16일부터 환율 변동 제한이 사라졌고, 완전한 변동환율제를 도입했어요. 주식시장에서는 1997년 12월 외국인이 우리 주식을 사들이는 한도를 종목당 50%로 확대했고, 1998년 5월에는 한도가 사라졌죠.
이로써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이 됐고, 주식투자 성공 방법의 하나가 ‘외국인 무조건 따라 하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어요. 막대한 투자 이익과 배당금을 벌면서 주식시장에서 생기는 이익의 많은 부분이 외국인 몫이 됐죠. 금융 시장 개방으로 들어온 외국 투자자금은 경제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됐어요.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계속 팔아 국내 주가가 폭락했던 것처럼, 우리 금융시장을 외국인이 쥐고 흔드는 일이 잦아졌어요.


어린이 경제신문 11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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